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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펌) 결혼포기한 골드미스의 넋두리

두덕리온라인 2017. 11. 27. 18:39

그 옛날 7년 전 많은 질타를 받은 글입니다. 

구구절절 공감이 가고 느끼는 바가 많아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었는데 생각이 나 올려봅니다.





(원글)


저는 올해로 33세의 노처녀입니다.

28세부터 맞선을 수도 없이 봐왔지만 어쩌다보니 인연을 만나지 못해 나이만 이렇게 들어차게 되었습니다.


저는 직업도 전문직이고 외모도 20대에는 종종 모델 제의를 받아왔을 정도로 괜찮은 편입니다(이곳에는 이런 표현을 싫어하시는 것 같아 죄송하단 말씀 올립니다 ^^;). 아버지도 고위직에 계시고 친척들도 모두 의사들로 집안 역시 한국사회에선 괜찮다는 소리를 듣는 편입니다. 그래서 사실 처음에는 제 주관 없이 존경하는 제 부모님의 기호에 맞는 조건의 신랑감을 찾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 생각했고, 따라서 남자의 직업과 학벌, 재력, 집안 등등을 꼼꼼히 따져 왔었습니다.


그런 와중 제 인생에서 몇몇의 남자들이 스쳐 지나가게 되었는데요. 검사, 변호사, 내과의사, 한의사, 중견기업 CEO가 저에게 선택된(‘선택’이란 표현에 어폐가 있습니다만...)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과의 교제는 길어봐야 5개월을 채 넘기기 어려웠습니다.


그들의 직업군을 굳이 밝히는 이유는 각 직업군 마다 저에게 남긴 의미들이 매우 독특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특별한 의미들은 일종의 제 삶의 경험으로 축적 돼서 이제는 부모님의 기호에 따른 배우자 선택이 아닌 저만의 주관적인 판단으로 인연을 찾아 나서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법조계와 의료계에 있었던 상대남들과의 만남은 당시 젊은(혹은 어린) 저에게는 고려의 대상도 아니었던 ‘시모’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법조계에 종사하는 남자들의 삶을 살펴보면 그들의 등 뒤에는 항상 어머니란 사람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사법고시를 준비한 세월, 사법연수원의 기간, 뒤따라오는 공익법무관의 기간을 모두 합치면 10년이 넘는 세월이 족히 걸리다보니 그들의 배후에는 이를 심적으로 배려하고 경제적으로 지지해준 어머니의 존재가 사뭇 남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의료계도 마찬가집니다. 남들보다 비싼 등록금에 2년이나 더 다녀야하는 의대생활, 거기에 인턴기간, 레지던트기간을 더하면 그들 역시 10년은 족히 되는 세월을 어머니의 관심과 원조로 버텨내야 했습니다. 따라서 법조계나 의료계와 같은 전문직종 남성들은 그들 스스로도 엄마의 요람 속을 벗어나기가 힘들었고,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고생해서 키운 아들인 만큼 며느리를 통해 보상받겠다는 심리가 강했습니다. 그러나 저도 대학과 유학시절을 모두 통틀면 족히 10년에 달하는 세월을 공부에 매진하며 제 부모님의 원조와 사랑과 보살핌으로 지내왔습니다만, 적어도 저희 집은 모녀유친적 성향이 없었으니 참 그들을 이해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이런 차이는 일종의 동물적 본능과도 연관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만(보통 아들에 대한 집착은 배우자가 부재한 미망인들에게서 나타나며, 부재한 남편의 자리에 아들을 앉히고자 하는 모습을 보면 알수 있습니다) 복잡한 이야기가 될 것 같아 이 지면에선 넘어가겠습니다. 아무튼 그중 상당수의 어머니들은 며느리 될 여자에게 내 아들을 빼앗긴다는 일종의 박탈감도 느껴 질투하고 시기하고 모함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경우 남자는 어김없이 고생하신 ‘우리 엄마’의 편에 서서 여친을 나무라거나 책망하지, 결코 여친의 편에 선다거나 혹은 중립의 입장에서 조정해보고자 한다거나 하는 경우는 전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저는 점점 애인사이와도 같은 끈끈한 모자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전문직종 집안에는 발을 들여놓고 싶지 않았습니다. 10개월을 교제하고 상견례 문턱에서 파혼한 저의 전 남자친구 역시 변호사였는데, 교제하는 기간 내내 소유욕 강한 예비시모의 질투와 모함으로 가슴앓이를 많이 해야 했습니다. (일을 마치면 7시라 7시 30분경 만나서 식당을 찾아들어가 8시쯤 식사를 합니다. 그럼 9시경 남친 어머니가 전화 와서는 지금쯤 식사 다 했을 테니 집에 들어오라 명령하십니다. 그럼 남친은 어김없이 어머니 명에 따르더군요. 어느 날은 판사님이 변호사들과 일요일에 낚시를 가자고 했는데 그날이 하필이면 저와의 100일 이었거든요. 그런데 결국 100일 파티도 안하고 판사님과의 낚시모임에도 안 나가고 어머니와 단둘이 도시락을 싸들고 공원으로 놀러 나가더라는.....) 그들은 오이디푸스와 이오카스테의 관계가 현실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게 해주었습니다.


소위 남자들의 마마보이 근성, 어머니(예비시모)의 집착적 성향에 질릴 대로 질린 저는 부모의 도움 없이 자수성가한 재력가를 만나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상당한 재력을 지닌 한 사업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가방끈은 다소 짧고 논리도 없는 어눌한 말솜씨가 한편으로는 순수해보이기도 해 얼마간 교제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들과의 만남 속에서 맞이하게 된 새로운 문제가 있었습니다. 바로 유흥업소문화입니다. 접대니 뭐니 매일같이 일이 많고, 그때면 어김없이 고급 룸살롱에서 모임을 가졌습니다. 그들에게 여성은 한번 까먹고 버리는 일회용 통조림 식품과도 같았고, 업소의 여성들을 애무하거나 그녀들과 관계하는 것은 ‘외도’가 아니라 한국의 ‘문화’ 또는 ‘전통’이라는 거창하고 고상한 이름을 갖다 붙이곤 했습니다. 따라서 저는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한 한국남성들의 유흥문화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유흥업소도 얼마나 은밀하고 치밀해졌는지, 룸살롱만이 아니라 법망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KS방, XX방, 그 뿐만 아니라 노래방, 마사지방, 피씨방, 휴게소 등의 이름으로 둔갑한 S촌들이 활개를 치고 있었고 생각보다 너무나 많은, 정말 너무나 많은 남성들이 아무런 죄의식 없이 성 상품들을 벗겨먹고 있었습니다. 한국 남성과 결혼할 경우 <내 남편 하나만은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야>라는 눈물겹고도 처절한, 마치 종교적 신앙에도 견줄 수 있음직한 철저한 믿음 하나 붙잡고 평생을 살아야 하는 게 한국여성의 현주소였습니다. 급기야 저는 한국 남성들은 사업가들뿐만 아니라 전문직종, 일반직종 할 것 없이 너나 나나 유흥업소를 즐겨 드나든다는 사실까지 깨달게 되었고 결국 결혼 자체에 대한 회의와 기피 마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지금 독신으로 살고 있습니다. 한국여성이 결혼을 감행할 때 감내해야 하는 문제는 <시모와 아들과의 관계>에 대한 문제, 그리고 <유흥업소> 문제라고 봅니다. 물론 전문직과 사업가를 예를 든 저의 이야기는 지극히 제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일반화 문제를 두고 논쟁하진 마셨으면 합니다.


결혼은 인간이 만든 제도이고, 출산과 모성은 인간의 본능이라고 했을 때, 저 역시 그 본능에 대한 욕구는 어쩔 수 없나봅니다. 결혼을 거부하고 인공수정을 통해 출산을 선택한 방송인 허수경씨의 용기 아닌 용기가 때때로 너무나 부럽더군요.


저는 맞선을 30살 이후 중단했습니다. 지금은 2년 넘게 교제중인 남자친구가 있습니다. 제 남자친구는 6년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제 작년엔 아버지도 돌아가셨습니다. 때문에 남친 측 부모님 문제로 머리 썩힐 일은 없습니다. (표현에 어폐가 있어 마치 남자친구 부모님의 사망을 축하하고 기뻐하는 것처럼 비춰질 오해가 있습니다만 결코 아닙니다.) 남자친구는 일류대학은 나왔지만 직업은 평범한 대기업 대리입니다. 물론 대기업에서도 유흥업소는 굉장히 많이 다니더군요. 아직 직급이 낮아서 그런지 접대할 일이 별로 없어 2년간 칼 퇴근을 하고 있긴 합니다만, 남친도 결국 점점 진급하게 되면 한국사회의 독약과도 같은 거미줄망을 벗어나진 못하겠지요. 한 사회의 문화는 단기에 소수의 목소리만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래서 저는 사랑하는 제 남친에게 제 인생을 기꺼이 내어놓고 대신 결혼과 아이는 내려놓았습니다. 글쎄요, 언젠가는 또 다른 지혜가 저를 이보다 더 생명이 넘치는 숲으로 이끌날이 오지 않겠습니까.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또 하루하루를 열심히 사랑하며 살아봅니다. ^^


노처녀의 넋두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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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글>

인터넷에 글을 올렸다는 사실 조차 잊고 지내다 문득 생각이나 들어와 보았더니 너무나 많은 분들이 읽어봐 주시고 너무나 분분한 의견들이 댓글을 통해 올라와 있어서 굉장히 놀랐습니다.


본문 말미에도 밝혔다시피 제 글은 장황한 논문도 아니고 한갓 개인의 넋두리에 불과합니다. 그동안 생각해 왔던 것들을 손가락 가는대로 주저리주저리(할머니들이 무료해서 혼잣말 중얼 거리시듯) 두서없이 늘어놓다보니 이렇다 할 결론도 없고, 군데군데 오타가 끼어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졸지에 이것저것 가탈스레 따지고 들며 결혼 해보려는 깐깐한 노처녀로 비치게 되었는데요. 비록 두서없이 휘갈겨 쓴 글이지만, 제 글을 자세히 읽으셨다면 미주알 고주알 죄다 따져가며 계산기를 두드려대는 B사감선생의 다이어리는 아니었다는 것을 알아주셨을 겁니다. 일부는 자기 자랑 글 아니냐며 아니꼽다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분도 보이는데, 익명의 공간에서 날 알지도 못하는 대중들을 상대로 나 자신을 자랑하며 희열을 갈구할만한 나이는 지났습니다. 다만 저는 한국사회에서는 전문직으로 분류되는 직종에 종사하고 있는 여성으로, 일반적으로 전문직종 종사자들이 남녀를 불문하고 상대 배우자들에 대한 현실적 기대치를 이야기의 서두에서 꺼내고 싶었을 뿐이었습니다. 저희 부모님과 일가 친척분들도 모두 전문직종에서 평생을 바치고 계신 분들이라, 제가 스물 예닐곱 적 세상을 잘 모르던 시절에는 그저 저희집 어르신들의 기대와 기호에 부응하는 배우자를 고르는 편이 현명한 방법이라 단순히 생각했기에 그저 남성을 물화(物化)해서 바라보고 판단했었습니다. 이것은 과거의 제 모습이었고, 사실 그런 줏대없던 제 태도에는 현명하신 부모님에 대한 존경과 맹신이 바탕하고 있었습니다. 부모님 손에 이끌려 기본적으로 한국에서 고려하는 조건들, 즉 학벌, 직업, 집안, 재력 등의 간단하고 가시적인 요소들만 고려하고서 저 스스로의 기준이나 가치관, 철학도 없이 맞선을 보아왔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자 제 환경을 문두에 밝혔던 것이었지, 명품가방, 명품 화장품이나 자랑하며 자기 희열에 젖어드는 종류의 으스댐은 관심 없는 사람입니다.


부모님의 의견은 물론이거니와 저 역시 일반적으로 전문직종 종사자라고 한다면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안정이 보장되고 적당한 지성도 보유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기에 전문직 남성이 제 배우자로 가장 합당한 사람이라 생각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것은 사람마다 서로 다른, 개개인의 가치관의 차이일 텐데요, 어떤 사람은 직업이나 학문적 배경을, 어떤 사람은 키나 체격과 같은 외형적 조건을, 어떤 사람은 성적 만족도를. 또 어떤 사람은 감정적 교류나 화학적 끌림을 결혼의 주요 조건 내지 이상향으로 삼고 계실 텐데요. 저의 경우는 근면함과 삶에 대한 치열함이 제가 바라는 이상적 조건이었습니다. 따라서 전문직이란 수많은 세월을 자기 발전에 투자한 사람이란 점에서 그런 이상적 조건을 충족시켜 줬었고, 그들이 지닌 근면과 성실, 삶에 대한 정치(精緻)와 섬세함은 제 남편과 제 아이의 아버지가 갖추어야 할 양보할 수 없는 조건이기도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단순히 표면적으로 전문직이 벌어들이는 돈의 크기나 대외적인 이미지가 지니는 의미는 저에겐 그렇게 중요하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맞선 횟수가 점점 많아지다 보니 더 이상 부모님이 중요시 생각하시는 학벌, 직업군 등의 표면적 조건들이 아닌 저 나름대로의 기준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더군요. 그 기준들은 제 나름대로의 자기고민과 번민의 시간이 낳은 결과물이고, 삶에 던진 물음표들에 대한 응답들이었습니다. 법조계와 의료계 종사자들 수십 명을 만나 깊은 대화를 나누고, 그 가운데 한 남자의 경우는 10개월이란 짧지 않은 시간을 함께하며 까마득한 스무 살 시절의 그 흥분과 떨림의 감정으로 사랑을 속삭이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 수많은 전문직 남성들의 집안이 한결 같이 보이는 모자유친적 성향, 모친의 오랜 뒷바라지로 전문직종에 들어선 어린 남성들이 정서적 독립을 불효로 연결시키는 강박관념, 자식을 독립된 인격체가 아닌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고 품안에서 내보내길 거부하는 수많은 어머니들, 그 안에서 허덕이는 하루살이보다 미천한 시집살이의 여성들, 참고 인내하고 고분고분 복종하는 여성에게 열녀비를 세워주는 시모와 남편의 자비 아닌 자비를 사랑이라 착각하고 참아내는 며느리, 아내, 아이의 엄마........ 이것이 한국의 결혼(혹은 시집)이란 것을 수많은 전문직종 남성들을 만나면서 깨달게 되었습니다.


본문 군데군데 밝혔다시피 수년 동안 전문직을 많이 만나온 지극히 한 개인의 경험에서 비롯된 넋두리이므로 전문직에 대한 일반화 논쟁은 피하고 싶습니다. 사실 이런 주제가 아니라 그 어떤 주제가 되었든 누구나 쉽게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릉 댈 수 있는 건 ‘일반화’를 둘러싼 논쟁 아니겠습니까?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건 아니다. 모든 상황이 다 그런 건 아니다.> 그것만큼 쉽고 명쾌하고 속편한 결론이 어디 있겠습니까. 따라서 저는 찜질방 한 구석에서 평범한 아줌마들이 둘러 앉아 삶은 계란을 까먹으며 신세 한탄을 늘어놓는 이곳 미즈넷에서 심각한 100분 토론의 장을 열어보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제 글은 어떤 종류의 직업군의 성향을 분석하고 일반화까지 도출해보자는 의도에서 쓰여진 것이 아니라, 편하게 찜질방 바닥에 드러누워 넋두리나 늘어보고 싶었던 마음에서 올린 글입니다. 다만 그 누가 되었든 그들에게 분명히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결혼은 성인이 된 남성과 여성이 경제적 정서적 독립을 통해 배우자가 중심이 된 가정을 꾸려나가는 것을 의미하며, 현명한 어머니라면 자신의 아들이(딸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만든 둥지를 떠나 숲을 향해 스스로 날아갈 수 있도록 보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효도는 분명 다른 차원입니다. 새는 숲으로 날아가 버리면 다시는 어미 새 곁으로 돌아오지 않지만 우리는 인간이기에 자식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맥락에서 효도를 이해하셔야 합니다. 엄마손 붙잡고 같이 아내를 타박하고 비난하며 배우자중심이 아닌 엄마중심의 삶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효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유흥업소 문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밑에 어떤 분들이 박철과 옥소리 사건을 통해 한국사회를 비난해 주셨는데요. 저 역시 공감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많은 남편과 아버지들이 참으로 착각하고 있는 데 유흥업소는 체질에 안 맞아서, 재미가 없어서, 돈이 아까워서 가지 않는 곳이 아닙니다. 바로 내 배우자와 자식들, 더 나아가서는 나 자신에 대한 양심 때문에 가지 말아야 하는 곳입니다. 한국 사회가 유교사상의 영향으로 친친(親親)의 관계가 사회적으로 중요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보니 유독 접대문화가 발달하고, 개인의 개성과 독창성보다 단체 내에서의 융화와 조화를 미덕으로 삼다보니 술문화가 발달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여기에는 마음을 터놓고 사람 간 교제(업무상 교제도 포함합니다)를 하기 위해선 술의 힘에 기댈 수 밖에 없는 폐쇄적인 한국의 민족성도 한몫 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남자가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유흥업소를 다닐 수도 있는 거지”, “남자가 유흥업소 안다니면 사회적으로 출세하지 못한다.”는 말이 여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 때문에 과거의 우리 어머니들은 벙어리 냉가슴 앓듯 남편의 공공연하고도 반-합법적인(헌법이 아닌 관습법상) 유흥업소 출입을 견뎌내야 했고, 이에 한국 사회는 마치 채찍 뒤에 당근을 던져주듯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조신하고 잘 참는 여성>들에게 ‘현명한’ 아내니 ‘지혜로운’ 어머니니 온갖 그럴듯한 형용사를 붙여주지요.


그러나 지금은 여성도 사회에 진출하고 심지어 과거 그토록 의기양양하던 남성들 스스로도 자기 여자를 경제전선에 떠밀고 있습니다만 소위 커리어우먼이 호스트바와 같은 유흥업소에 출입한다면 어떤 반응들을 보일까요? 저는 여자도 남자처럼 유흥업소에 출입하자고 주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들의 어머니, 그리그 할머니, 증조할머니, 그 할머니들의 어머니들이 참고 살아온 그 위대한 시간들이 있어왔기에 우리들의 가정이 지켜지고 대대로 계승될 수 있었습니다. 일부일처를 지향하고 동물이 아닌 인간다움을 바탕으로 가정을 지켜낸 것은 이 땅의 여성들이 역사 속에서 이루어낸 눈물겨우리만큼 위대한 업적입니다. 여성조차 유흥업소에 공공연하게 출입하게 되는 문화가 정착된다면 아마 더 이상 결혼은 무의미하고 가정은 붕괴되겠죠. 따라서 인류가 일부일처와 가정을 대대로 이어나가려면 암묵적으로 어느 한쪽(대게가 여성쪽)에게 인내를 강요하며 이것이 미덕이라는 의식을 주입하는 수밖에 없다는 점을 적어도 여성들은 알아야 하지 않겠냐는 점입니다.


서구사회가 한국보다 성 개방이 일찍이 이루어진 곳이라 오히려 더 난잡하다 말씀하시는 분도 있는데 이는 다른 맥락에서 이해하셔야 합니다. 서구와 아시아는 집단주의와 개인주의 사회로 구분해서 이해하셔야 합니다. 개인주의사회는 개인의 판단과 자유가 높게 평가받기 때문에 개인 간의 구속력이 느슨한 사회를 말하고, 집단의 판단보다는 개인의 판단을 우선시합니다. 이에 비해 집단주의사회는 개인이 특정 집단에 소속 및 통합되어 이들 집단에 무조건 충성하는 대가로 보호받는 사회를 말하며 자신이 속한 집단과 다른 집단을 명백하게 구별하여 차별적으로 대우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개인주의 사회는 개인적인 양심에서 나오는 죄책감을 통해서 사람들을 통제하려고 하는 반면, 집단주의 사회는 집단적인 의무감에서 나오는 수치감을 통해서 사람들을 통제하려고 합니다.


따라서 수치감은 사회적이며 죄책감은 개인적입니다. 수치감을 느끼고 안 느끼고는 비행사실을 남이 알고 있느냐 없느냐의 여부에 달려있는 반면 죄책감은 남이 알고 있는지의 여부와 관계없이 내부양심에 따라 느끼죠. 따라서 한국의 정치 인사들이 자신이 저지른 부정에 대해 개인적 죄책감보다는 대중들에게 그것이 드러났을 때 수치감을 느껴 자살하는 행동을 보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시아의, 아니 적어도 한국의 가정 내에서도 마찬가지로 드러납니다. 즉 자신의 외도가 가정 내에서 드러나게 되었을 때에 비로소 반성의 행태를 보이지 그것이 드러나지만 않는다면 문제될 것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죠. 또 직장의 과장님 부장님 차장님 이사님 모두 유흥업소를 출입하는데 나도 가도 된다는 식의 발상 역시 집단의 행동에 개인의 행동을 오버랩 시킴으로서 정당화 하는 형태로 보셔야 합니다. 다시 말해 회사 동료들이 모두 간다면 내가 가도 괜찮다는 식의 논리입니다. 여기에는 자신의 내적 양심은 기능하지 않죠. 오히려 서구에서는 개개인의 신의를 바탕으로 교제가 이루어짐으로 배우자간의 외도의 빈도는 한국보다 훨씬 적습니다.


이렇게 장황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유는 여러분들 댓글 가운데 <다 갖추고 살수 없으니 포기할건 포기하라>는 간단명료한 제안들에 대한 저 나름의 변론을 위한 것입니다. 모자유친 문제와 유흥업소 문제뿐만 아니라 여러 아줌마들이 주장하듯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많은 문제들이 남녀 사이에 도사리고 있음은 잘 알고 있습니다. 당연히 서로 양보하고 극복하며 생을 살아가는 것이 결혼이란 점 동감합니다. 다만 배우자에 대한 정절의 의무, 부모와의 정서적 독립을 통한 배우자 중심의 가정 형성 이 두 가지 만큼은 혼인의 기본적인 요소, 아니 혼인 그 자체이기 때문에 타협을 운운할 문제는 결코 아니라는 점입니다. 


위와 같은 이유로 저는 결혼이란 사회적 제도를 거부하고 스스로 인공수정 출산을 통해 아내나 며느리가 아닌 어머니의 위치만을 선택한 허수경씨의 용기에 때때로 부러움을 느낀 적도 있었습니다. 이 또한 생명윤리나 종교적 논의, 아이의 권리 등에 대한 논쟁을 하고 싶은 맘은 없습니다. 저는 철학도, 종교도, 사회학도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또한 저는 페미니즘도 뭔지도 잘 모르는 사람이고 따라서 여성들에게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며 독신주의를 설득하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다만 여성이라면 현실 속에서 시퍼렇게 도사리는 문제들을 두 눈 뜨고 직면할 수 있는 시각은 최소한 가져야 하지 않겠냐는 일종의 문제의식 정도는 저 자신에게 던져보고 싶었습니다. 아래의 어떤 분의 표현처럼 싱글 벙글 행복한 바보 형처럼 인생을 소비하진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뿐입니다. 바보형은 죽는 순간까지 미소 짓지만 그의 생은 의미가 없잖습니까.


그리고 제 남자친구에 대해 걱정하는 분들이 계시는데요. 여성의 인권이 소중하듯 남성의 인권 역시 소중하다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만약 지금 교제중인 남자친구에게 결혼하자는 헛된 약속으로 눈속임을 해두었다면 그 많은 비난을 감수하겠습니다. 그러나 남자친구와 저는 서로의 생각과 진심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장황한 이런 이야기들, 당연히 제가 가장 사랑하는 제 남자친구와 나눕니다. 제 남자친구는 부모님 재산은커녕 부모님 병수발로 크게 빚을 안고 사는 친굽니다. 5평짜리 원룸하나가 전부인 평범한 대기업 월급쟁이에 불과합니다. 제가 가탈스레 조건이나 따지고 계산기나 두드리는 노처녀였다면 제 남자친구를 만나지도 않았을 겁니다. 저는 비록 남자친구가 재산도 없고 사회적 지위도 덜하지만 충분히 독립적이고 충분히 인간적인 사람이라 그 어떤 판검사의사선생님 남친들보다 자랑스럽습니다.


한갓 찜질방 넋두리가 이렇게 쿤 파장을 일으킬 줄은 몰랐네요. 아무튼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33살은 냄새나지 않습니다. ㅋ 70~80쯤 되면 난답니다. 참고가 되었기를...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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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베스트 답글은 이어지는 판으로 연결해놓았습니다. 

7년 전 당시에는 이 글의 댓/답글이 지금과 비교도 안되게 찬반이 격렬했고, 이 글 쓰신분에 대한 인신공격 및 육두문자도 많이 있었기에 이어지는 판의 글도 다소 과격한 점 참고부탁드립니다. 



*거슬려 하시는 분들이 있는 것 같아 오타(구지>굳이)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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